넋두리

[스크랩] 김삿갓 이야기-사랑도 한 때

사랑25시 2006. 1. 31. 17:59
      사랑도 한 때


    가련(可憐)한 가련(可憐)의 사랑

김삿갓에게서도 어찌 사랑을 뺄 수 있으랴. 이때쯤의 김삿갓은 발없는 말처럼 빠르게 소문이 퍼져서
알게 모르게 유명인이 되어 있었는데, 정작 본인은 잘 모르는 일이라. 함흥에서의 일이다. 거기에는 김삿갓을 은근히 홀로 사모하는 가련(可憐)이라는 기생이 있었고, 김삿갓은 어느 산골 할머니 집에서 잠을 자게 되었는데, 그 집 할머니 부탁이 함흥에 가면 자기 딸이 가련(可憐) 이라는 이름으로 기생을 하고 있으니 가게 되면 꼭 한 번 만나 달라는 부탁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함흥에서 김삿갓이 가련(可憐)을 찾게 되었고 그렇게 가련(可憐)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가련(可憐)의 집으로 간 김삿갓은 이윽고 가련(可憐)이 시를 사랑하는 마음씨 아름다운 여인임을 알게 되고, 그날 저녁 술 한잔을 따르며 가련(可憐)이 김삿갓에게 말하기를
"남자와 여자 사이는 십 년을 두고 사귀어도 정이 전연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 만나도 백년지기 처럼 느껴지는 분도 있는가 보옵니다."
그날 저녁 정을 깊이 나눈 김삿갓과 가련(可憐)은 더욱 더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삿갓은 가련(可憐)과 함께 주변의 경치를 구경하며 행복하게 지내게 되었다.
그렇게 세월이 6개월 정도 흐르고 갈수록 가련(可憐)에게 정이 깊어 가는 삿갓이였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김병연아! 너는 정신을 차리고 네 자신의 과거를 반성해 보아라. 너는 조상이 저지른 죄악을 속죄하기 위해 처자식까지 버리고 집을 나온 몸이 아니었더냐. 그러한 네가 이제 와서 기녀의 품안에서 방탕을 일삼고 있다면, 너는 한낱 무뢰한이 아니고 뭐겠는가."
이런 죄책감에 떠날 결심을 하는 김삿갓. 그러나 어이 마음이 아프지 않겠는가. 가련(可憐)에게 떠남을 알려주고 가련(可憐)도 처음부터 영원히 묶어 놓을 수 없음을 알았기에 문간에 기대서서 눈물을 씹어 삼키며 전송을 하고 있노라니까, 김삿갓도 차마 발길을 돌리기가 괴로운지 가련(可憐)을 그윽이 바라보다가, 즉석에서 결별시 한 수를 들려주는 주었다.

      가련(可憐)의 문전에서 가련(可憐)과 이별하려니
      가련(可憐)한 나그네가 더욱 가련(可憐)하구나
      가련(可憐)아! 가련(可憐)한 몸 떠나감을 슬퍼하지 마라
      가련(可憐)을 잊지 않았다가 가련(可憐)에게 다시 오리.

      可憐門前別可憐 (가련문전별가련)
      可憐行客尤可憐 (가련행객우가련)
      可憐莫惜可憐去 (가련막석가련거)
      可憐不忘歸可憐 (가련불망귀가련)
이런 김삿갓을 바람둥이라고 욕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그렇게 좋지도 않다. 집에서 그만을 기다리는 아내가 있고 그 아내 입장이 저절로 생각케 되니 지금 나는 빨간 보리밥을 먹고 입맛이 쓴 삿갓과 같은 기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를 쓴 것은 어쩌란 말인가. 입맛이 쓰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을...



    명기(名妓) 홍랑(紅娘)

가련(可憐)을 떠나와 함관령을 올라 가려니 계절은 어느덧 4월인데 기후가 어떻게나 차가운지, 평지에서는 진달래가 핀지 오래건만, 함관령 꼭대기에서는 이제야 겨우 피기 시작하였다.
김삿갓이 고생스럽게 함관령을 넘어 홍원읍에 도착하였지만, 천하의 명승지들을 두루 구경하며 돌아다니는 김삿갓의 눈에 홍원 팔경은 조금도 신기할 것이 없었다. 경치보다도 오히려 마음이 끌리는 것은 명기(名妓) 홍랑(紅娘)에 대한 이야기였다.

홍랑(紅娘)이 경성(鏡城)에서 기생 노릇을 하고 있을 때, 최경창이란 사람이 함경평사로 경성에 부임해 오자, 홍랑(紅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홍랑(紅娘)의 청초한 성품과 뛰어난 재기(才氣)를 뜨겁게 사랑하게 되었고, 홍랑(紅娘)은 홍랑(紅娘)대로 최경창의 고매한 인격과 활달한 기개를 진심으로 존경해 왔었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할까, 최경창이 서울로 떠나가게 되자, 두 사람은 다시 만날 것을 철석같이 기약하였다. 그리고 홍랑(紅娘)은 최경창을 배웅하기 위해 경성에서 자기 고향인 홍원까지 따라 왔었다. 그리하여 함관령 고개 위에서 마지막 작별을 나누게 되자, 홍랑(紅娘)은 그리운 사람에게 버들가지 하나를 꺾어 올리며 다음과 같은 시조를 읊어 보였다.

      묏버들 가려 꺾어 님의 손에 보내노니
      주무시는 창 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곳 나거든 나인 줄로 여기소서.
최경창은 그 시조를 듣자, 이별의 비애(悲哀)로 가슴이 메어져 오는 것만 같았다. 홍랑(紅娘)의 눈물 겨운 슬픔이 너무도 애절하게 가슴을 찔렀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최경창은 그 시조를 즉석에서 다음과 같은 한시로 옮겨 놓아 놓기까지 하였다.

      折楊柳寄與千里人 (절양유기여천리인)
      爲我試門庭前種 (위아시문정전종)
      須知一夜新生葉 (수지일야신생엽)
      樵悴愁眉是妾身 (초췌수미시첩신)
많이 접해 본 시이긴 해도 이런 곡절이 숨어 있는 줄 몰랐다. 여자만이 쓸 수 있을 것 같은 왠지 모를 섬세하면서도 부드러움이 있는 시다. 버들잎을 띄워 물을 천천히 마시게 하는 그런 지혜가 있고, 버들가지를 꺾어 님에게 주는 간절한 사랑이 있는데 요즘은 버들잎을 띄워주면 공해에 찌든 잎 때문에 물이 더러워지고 버들가지를 꺾어 줘도 그걸 심을 한 줌 흙도 없이 사는 우리다. 허나 마음 만은 풍요롭게 살자. 한그루의 버드나무를 심으며...




    시짓기 화전 놀이

김삿갓이 평양에 갔을 때의 일이다. 평양은 '기생의 고장' 인지라 노기(老妓)들끼리 모여 화전놀이를 하고 있는데, 냄새가 좋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합류를 하니 그것이 단순한 화전놀이가 아닌 '시짓기 화전놀이' 라는 것이였다
'화전놀이' 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매우 풍류적인 봄놀이다.
소금물로 반죽한 찹쌀 가루로 전병을 부칠 때에, 진달래꽃으로 수를 놓아 부쳐 먹는 놀이인 것이다. 꽃시절이면 시인 묵객들이 시회(時會)를 할 때에 흔히 이용하는 놀이였던 것이다.
기생들은 김삿갓을 반가이 맞이하며 화전과 술을 내어 놓으니 김삿갓이 고맙다는 뜻으로
"즐거운 시회에 불청객이 훼방을 놓아 죄송하게 되었소이다. 여러분이 시짓기 화전놀이를 하셨다니, 나도 고맙다는 뜻으로 화전놀이에 대한 옛날의 시를 한 수 적어 놓고 가겠소이다."하고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적어 놓았다.

      솥을 돌로 괴어 놓은 개울가에서
      흰 가루를 기름에 튀겨 전병을 부치다
      저로 집어 넣으니 입에는 향기가 가득
      한 해의 봄소식이 뱃속에 전해오네.

      鼎冠탱石小溪邊 (정관탱석소계변)
      白粉淸油煮杜鵑 (백분청유자두견)
      雙著挾來香滿口 (쌍저협래향만구)
      一年春信腹中專 (일년춘신복중전)
외로운밤 누가 겨울이 깊으면 봄이 늦지 않았다고 하던데, 몸은 추워도 머리속에서는 따뜻한 봄햇살이 그윽한 뜰에서 화전놀이의 풍경이 떠오른다.
한번도 해 본적도 먹어 본적도 없다. 이제는 진달래가 먹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이고, 그런다고 다른 누군가가 해주지도 않으며, 내가 해먹자고 진달래꽃을 딸 생각은 해 본적도 없다. 봄이라고 와도, 진달래가 활짝펴도, 아! 진달래가 피었구나 하면 봄이 가버리는 안타까운 현실에 있다.
내년 봄에는 미친척하고 진달래를 한 번 따볼까? 맛이야 옛날 같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그 흰 찹쌀가루 반죽에 수 놓아 질 분홍빛 진달래가 무척이나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 아름다움을 주위 사람들과 같이 나누고 싶다.

 
출처 : 블로그 > 양지바른 오두막집 | 글쓴이 : 술래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