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값이 부족하면 한 수 더 읊을까요? 내리 굶은 김삿갓이 산중을 지나가는 길이었다. 저만치에서 노인 네댓 명이 모여 앉아 잔을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옳지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김삿갓은 노인들의 틈에 끼어 막걸리라도 한 잔 얻어 마시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어르신들 안녕하십니까? 지나가는 과객입니다만, 탁주 한사발 얻어 마실 수 있겠습니까?" 자기들끼리 잔을 돌리며 흥에 취해 있던 노인들은 불쑥 나타나 흥을 깬 김삿갓을 못마땅하게 쳐다 보았다. "우리는 지금 한창 흥에 겨워 시를 짓고 있는 중인데 왜 불쑥 끼어 들어 흥을 깨는가?" 그말에 김삿갓은 다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제가 무례를 범했군요. 그러나 저도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니 자리에 끼워 주시면 한 수 읊어 보겠습니다." 노인들은 김삿갓의 초라한 행색을 보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당신 같은 사람이 시를 짓다니 그게 정말인가? 만약 시를 짓지 못하면 거짓말을 입에 담은 죄로 저 산등성이까지 기어서 가야하네." 김삿갓이 노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 들였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선 탁주 한 사발만 주시면 그걸 먹고 시상을 다듬어 보겠습니다." 그러자 노인들은 각기 술 한잔씩을 따라 주었다. 막걸리 서너잔을 마시니 대번에 배가 벌떡 일어나는 게 그제서야 살 것 같았다. "자 이제 술도 얻어 마셨으니 시를 지어 보게나." "예 그러지요. 먼저 어르신들이 한 수 지어주시면 제가 화답하는게 어떻습니까?' "그거야 마음대로 하게. 그럼 내가 먼저 조(鳥)자, 운(雲)자, 군(群)자를 넣어 한 수 지을테니 화답해 보게."
房中不起雲(방중불기운) 山間是何鳥(산간시하조) 飛入鳳凰群(비입봉황군) 돌 위에서는 풀이 돋기 어렵고 방안에서는 구름이 일어날 수 없는 것 산에 사는 어떤 잡새가 봉황의 무리 속에 날아 들었는가. 자신을 봉황에 비유하고 김삿갓은 잡새에 비유를 하였다.
常留五彩雲(상류오채운) 今宵風雨惡(금소풍우악) 誤落野鳥群(오락야조군) 나는 본래 하늘 위에 사는 새라서 언제나 오색구름 속에서 노닐었는데 오늘따라 비바람이 몹시 몰아쳐 들새 무리 속에 잘못 끼어들었구나 무리에 잘못 끼어 들었다고 화답한 시... "이 정도면 술 몇 잔 값은 넉넉히 치렀다고 생각됩니다. 그럼 저는 이만 일어서겠습니다." 일어서는 김삿갓의 뒷통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노인네들이 수근거리기 시작한다. "허허~ 봉황 위에 천상조라.... 잡새에 들새는 격을 높혀 줬구먼." "행색은 거진데, 우리가 잘못 건드린 거 같으니 다시 불러 사과하세" 그러면서 김삿갓을 불러 세우는 것이었다. 그러자 김삿갓이 뒤돌아 서서 대답하는 말, "어르신들, 죄송하지만 제가 갈 길이 바빠서 그러는데, 혹 술값이 모자라면 한 수 더 읊어 드릴까요?" 노인들이 가만 생각하니 그랬다간 이제 더 무슨 창피를 당할지 몰라 됐노라고 손짓하며 사양하는 것이었다.
퇴짜를 맞자 심사가 뒤틀리고 주인의 소행이 괘씸해서 시 한 수를 지어 놓고 일어섰다.
主人人事難爲人(주인인사난위인) 設宴逐客非人事(설연축객비인사) 主人人事難爲人(주인인사난위인) 사람이 사람집을 찾아와도 사람대접을 아니하니 이는 주인의 인사가 사람답지가 못하도다. 잔칫집에서 손님을 쫓는다는 것은 주인의 도리가 아니거늘 이는 주인이 사람답지 못한 때문이로다. "여보게, 필시 예사 사람이 아닌 것 같으니 불러 요기나 시켜 보내시게" 이렇게하여 주인의 부름을 받은 김삿갓이 뒤를 돌아보면서 하는 말, "내 비록 걸식하는 사람이나 사람다운 사람이 주는 음식은 먹어도 사람답지 않은 사람이 주는 것은 먹지 않소이다." 하면서 휭~하니 나가버렸다. 이를 본 주인의 얼굴은 어땠을까? 심히 궁금하구먼....ㅎㅎㅎ
저녁을 먹고 나니 피곤이 몰려와 선비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그만 잠이 들었다. 그런데 얼마나 잣을까, 방이 선득하여 일어나 두리번 거리니 옆에 있어야 할 선비가 없지 않은가, 뒷간에라도 갔나 하고 그냥 누워 남은 잠을 잤다. 새벽에 소피가 마려워 밖으로 나가 뒷간을 찾는데 안체에서 선비가 고이춤을 메만지며 나오는게 아닌가. 어제 얘기로는 혼자 산다고 했고, 안체에는 아들 내외가 산다고 했는데.... 사랑체로 나온 선비에게 "간밤에 사랑체는 비었더이다?"하고 넌지시 물었다. 그랬더니 이 선비 하는 말, "며느리가 지금 유종(乳腫)으로 젖을 앓고 있는데, 아들 놈이 지금 없어 그걸 빨아줘야 해서....,"하면서 얼버무린다. 이 말을 들은 김삿갓이 망할 놈의 양반이 예의도 잘 지킨다고 분개하면서, 다음과 같은 嚥乳章三章(연유장삼장)라는 시를 지어 바람벽에 붙혀주고 선걸음에 그 집을 뛰쳐 나와버렸다.
婦嚥其下(부연기하) 上下不同(상하부동) 其味卽同(기미즉동) 시아비는 그 위를 빨고 며느리는 그 아래를 빠네. 위와 아래가 같지 않지만 그 맛은 한가지일세. 父嚥其二(부연기이) 婦嚥其一(부연기일) 一二不同(일이부동) 其味卽同(기미즉동) 시아비는 그 둘을 빨고 며느리는 그 하나를 빠네. 하나와 둘이 같지 않지만 그 맛은 한가지일세. 父嚥其甘(부연기감) 婦嚥其酸(부연기산) 甘酸不同(감산부동) 其味卽同(기미즉동) 시아비는 그 단 곳을 빨고 며느리는 그 신 곳을 빠네. 달고 신 것이 같지 않지만 그 맛은 한가지일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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