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그 꿈을 제가 살래요.” “꿈을 사다니. 뭘로?” “비단 치마를 드리면 안되겠어요?” “…그러려무나.” 보희는 별 생각 없이 응낙하고 옷깃을 벌린 문희에게 말했다. “어젯밤 꿈을 네게 준다!” 신라 서라벌에 군림하는 지존을 낳는 이 태몽이 보희에게서 문희 한테로 팔아 넘겨진 것이다. 그 열흘 후인 정월 16일, 보희와 문희의 오빠 김유신은 선덕여왕의 조카 김춘추를 불러내어 자기집 앞에서 공차기를 한다. 유신은 엄청난 계략을 세워 놓고 있었다. 연개소문의 아이를 가진 보희로 하여금 춘추와 관계를 맺게 한 다음 그의 아이를 임신한 양 꾸며 결혼 시키려는 음모였다. 유신은 공을 차다 짐짓 춘추의 옷 끈을 밟아 찢어뜨려 놓고 집에 들어가 꿰매자며 데리고 들어 온다. 그는 보희에게 옷 끈을 달도록 종용하나 그녀는 듣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문희가 대신 방에 들어가 옷 끈을 꿰매는데, 유신의 뜻을 알아차린 춘추는 그 자리에서 그녀와 육체 관계를 맺는다. 유신은 기다렸다는 듯이 후속 작전을 신속히 수행한다. 문희가 부모 허락도 없이 김춘추의 아이를 뱄다며 동네 방네 소문내는 한편, 선덕여왕이 남산에 나들이한 날을 골라 마당에 쌓아 올린 장작에 불을 지핀다. 문희를 태워 죽이겠다는 것이다. 남산에서 장작불 연기를 본 여왕은 춘추와 문희가 정분이 난 것을 알게 되고 그들을 서둘러 혼인케 한다. 이같은 소동 끝에 보희의 아들은 문희가 낳은 양 교묘히 겉치레 되었다. 통일신라 문무대왕 법민의 탄생에 얽힌 비화다. “삼국사기”와“삼국유사”에는 보희가 문희에게 판 꿈 얘기며, 김유신과 김춘추의 공차기 사연이 의아스러울 만큼 소상히 기술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사실대로 밝혀져 있지는 않으나, 자못 까닭이 있어 보이는 것이다. 김유신은 금관가야 시조 김수로왕의 직계 12대손이다. 가야가 신라와 통합되는 바람에 신라 귀족으로 편입되기는 했으나, 어엿한 왕손 집안. 이 명문가의 규수가 머슴의 아이를 가져 미혼모가 되는 불상사를 유신은 이렇게 막아냈다. 동시에 사생아가 될 뻔한 법민을 거뜬히 신라 왕자로 탄생시키기까지 했던 것이다. 이 놀라운 계략을 김춘추도 알고 있었다. 유신이 흥정한 것이다. 신라왕은 역대로 성골(부모가 모두 왕족인 최고의 신분)만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선덕, 진덕여왕을 끝으로 성골은 깡그리 바닥난 형편이었다. 진골(부모의 어느 한쪽만이 왕족인 귀족 신분) 중의 누군가가 왕이 될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진골의 하나인 김춘추는 자신이 신라왕이 되는 막후 공작을 유신에게 맡긴다. 보희의 아이를 자기 아이로 받는 조건부 흥정이었다. 계획대로 김춘추는 신라 제29대 무열왕으로 즉위(654년), 곧이어 태자가 된 법민이 신라의 병권을 휘두를 무렵, 왜에서는 연개소문의 또 하나의 아들이 태어나 소문을 떨치고 있었다. 이제 아스카 장안 사람 치고 경왕녀가 낳은 아이의 아비가 연개소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교기의 정략으로 ‘팔려가는’ 경왕녀를 동정하던 인심은 어느새 그녀를 비판하는 쪽으로 기울어 경왕녀의 저택에는 ‘팔십가(八十家)’라는 별명까지 붙여지기에 이르렀다. 성기를 파는 집이라는 뜻이다. 당시 아스카 근처의 번화가 츠바키치(つばきち 요즘의 나양현 앵정시금옥)엔 ‘팔십가’라고 불린 유곽 동네가 있었다. 팔십가란, 성기를 파는 거리 또는 성기를 파는 집을 의미했다. 아스카 사람들은 경왕녀의 남편 가마타리가 경영하는 제철소 근교의 유곽 동네 이름으로 그녀의 집 별명을 삼은 것이다. 농을 담은 욕이었다. 경왕녀가 연개소문의 아들을 낳았다는 소문은 교기 귀에도 들어갔다. 그는 경악하고 격노했다. 왕비라면 영락없는 반역죄 감. 가볍게 메겨도 유배, 중형으로 다스리면 사형이다. 그러나 지금은 교기가 다스릴 수 없는 남의 아내. 그것도 교기 스스로가 하사한 여인이다. 경왕녀의 부정은 거꾸로 그의 남편을 속인 자신의‘배신’으로 되돌아 오고 있는 셈이다. 당황한 교기는 궁리 끝에 왕궁 내 최고의 미인 궁녀 안견아를 주기로 한다. 조정 중신 모두가 탐내는 미녀를 하사함으로써 가마타리의 환심을 사는 한편, 경왕녀에의 보복을 겨냥했던 것이다. 안견아가 가마타리의 후실로 시집 온 날은 공교롭게도 칠월 칠석이었다. 남편 가마타리는 소년처럼 들떠 일찌감치 신방에 들었다 했다. 부부라고는 말뿐, 아이를 낳은 다음에도 동침 한번 하지 아니한 남편이 총총히 신방들이 했다는 소리에 경왕녀는 심란했다. 당치 않는 일이었으나, 그들의 정사 모습이 어른거렸다. 알몸으로 안겨 있는 안견아와 숨을 몰아쉬며 말타고 있는 남편의 허리 놀림…. 아이를 낳고 젖을 먹이지 않으면 여인은 쉽사리 성적 충동을 느낀다. 경왕녀는 불두덩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옛날 룸살롱의 이름은‘치 받기 집’] ‘츠바키(つばき)’는 동백의 일본어지만, 원래‘치 받기’란 우리 옛말에서 빚어진 낱말이다 ‘치’는 남자, 남근을 가리켰다. 뭉뚝하게 치솟은 꽃심을 다섯 개의 꽃잎으로 떠 받치듯 하고 있는 동백꽃 송이의 모양새가 마치 남근을 다섯 손가락으로 떠받들고 있는 것 같다 하여 ‘치(남근) 받기’라 불렀던 것이다. 동백이 흔히 남녀의 합환을 상징하는 꽃으로 삼아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고대의 룸 살롱인 유곽을‘치 받기’라 부른 것도 남자, 남근을 받는 데가 유곽이었던 탓이다. 유곽은 교통의 요충지에 세워졌다. 남자들의 내왕이 잦은 곳, 사통팔달, 각지로 연결되는 로터리에 자리했다. 이같이 여덟 갈래 십자로에 있는 ‘팔십(성기를 파는)집’이라 하여 유곽은‘팔십가’라 불리기도 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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