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식

슬로시티(slow city)

사랑25시 2007. 9. 7. 18:30

 

도시는 속도가 지배한다. 도심 횡단보도를 뛰듯이 건너고, 앞선 차가 주춤거리면 경적을 울려댄다. 도시에서 속도는 근면과 능력과 성공을 상징하는 미덕이다. 그런 도시(city)와 느림(slow)을 결합한 '슬로시티'는 분명 모순적이다. 그러나 현재 세계 10개국 93개 도시가 '느리게 사는 공간'을 표방한다.  

 

슬로시티 운동은 1999년 이탈리아의 브라 등 4개 도시가 '고속사회의 피난처'를 자처하면서 시작됐다. 55개에 이르는 서약에는 소음과 교통량을 줄일 것, 녹지대와 보행자 전용 구역을 늘릴 것, 지역의 전통 문화와 음식을 보존할 것 등이 들어 있다. 단, 인구 5만명이하 도시만 자격이 있다.

 

속도에 끌려가지 않고 살 수 있는 상한선이다.그   원조 격인 브라는 인구 3만명이 채 안되는 소도시다. 상점들은 오후 3시가 넘어야 하나둘씩 문을 열고 그나마 1주일에 이틀은 반드시 쉰다. 마을 중앙광장에는 농민들이 야채와 과일을 내다파는 시장이 선다. 일상 업무는 대부분 걸어서 해결한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마음의 속도로 흐른다. 

 

슬로시티는 (slow food)에서 영감을 얻었다. 1986년 로마의 명소 스페인계단 곁에 맥도널드가 들어서면서 촉발된 슬로푸드 운동은 맥도널드, 즉 패스트푸드가 추구하지 않는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슬로푸드는 천천히 먹는 것이 아니다. 천천히 만들어진 재료로 요리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돼지가 60㎏이 되는데 5년이 걸렸지만, 지금은 단 6개월에 100㎏이 돼 젖니도 빠지기 전에 도살된다. 은 속성 욕망이 낳은 비극이다.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녹차에 농약을 뿌린 아이러니도 있다.

 

자연의 시간대로 먹자는 운동을 삶의 공간으로 확장한 것이 슬로시티다. 그렇다고 슬로시티가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균형'이다. 빠른 세상에서 얼마나 빨리 가야 할지를 자신이 결정하는 것, 곧 자기 삶의 리듬을 스스로 조절하자는 것이 슬로 철학이다.

 

국내에서도 전남 담양 신안  장흥군 등 지방자치단체 4곳이 7일부터 슬로시티 국제연맹의 실사를 받는다. 모두 시골의 아늑함이 느껴지는 곳들이다. 서울 같은 대도시라고 안될 건 없다. 골목길 사이로 여유가 묻어나는 동네라면 동(洞) 단위 등의 슬로시티도 추진해봄 직하다.

                                                                         - 문화일보 오후여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