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스크랩] 유랑걸식하며(3)

사랑25시 2006. 2. 3. 11:12
고약한 친구집에서 있었던 일

삿갓이 문전걸식하며 팔도를 유랑하던 중
경기도 양평 땅을 지나치게 되었다.
마침 양평에는 전부터 약간 면식이 있는 친구가 사는 곳이기도 해서
친구의 얼굴이나 한번 보고 갈까 싶어 찾아가니
마침 사랑채에 혼자 낮잠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달콤하게 즐기는 오수(午睡)를 방해한 것 같아 미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 안보고 지나치면 또 언제 들릴지 몰라
무턱데고 들어가 친구를 깨워 이런 저런 그간의 얘기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 된듯 했다.
삿갓도 내친 길이니 때도 그런고로 점심이나 한끼 때우고 갈참으로
죽치고 있는데, 밖에서 친구의 부인인듯한 아낙의 목소리가 들린다.
"인량복일(人良卜一) 하오리까?"
그러자 같이 있던 친구가 문도 열지 않고 밖으로 하는 말이
"월월산산(月月山山) 커던" 하면서 맞대꾸를 하는 것이 아닌가.
삿갓이 가만들어 보니 이것들이 파자(破字)로 대화를 하는 데,
人良卜一을 합자(合字)하면
사람 人 아래에 어질 良 놓으면 밥 식(食)자가 되고
점칠 卜 아래에 한 一을 받치면 윗 상(上)자가 된다.
그래서 "밥상 올릴까요?"가 되는 것이다.
이에 친구의 대답인 月月山山은 
달 月을 옆으로 나란히 놓으면 벗 붕(朋)이 되고
뫼 山을 아래로 겹쳐 놓으면 떠날 출(出)이 되므로
결국 "친구가 떠나거던..."하는 말이 된다.
파자놀이라면 당대의 내로라하는 삿갓 앞에서 어슬픈 짓거리를 했으니...
하는 짓거리를 보자하니 하도 어이없어 삿갓이 맞장을 치며 하는 말,
"정구죽천(丁口竹天)하구나."하였는데 이를 합자해 보면,
고무래 丁 안에 입 口 넣으면 그러할 가(可)자가 되고
대나무 竹 아래에 하늘 天을 붙이면 웃을 소(笑)가 된다.
한마디로 "가소롭다. 즉, 웃기고 있구나."하는 말이다.
-- 하늘 천 자 보다는 어릴 요(夭) 자가 되어야 하지만
파자놀이에서는 비슷한 天 자를 쓴다고 한다. --
삿갓은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간다 온다 말 한마디 않고 집 밖으로 나와버렸다.
오랫만에 일부러 찾아 본 친구에게 이럴수가 있을까.
아마도 그 때도 지금 이 시대처럼 위에서는 도둑질하기 바쁘고,
사람들은 제 몫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있었나 보다..... 푸하하하하하
개성인심

몹시도 추운 겨울날 김삿갓이 개성에 갔을 적에 
어느 집 문 앞에서 하룻밤 재워주기를 청했다. 
그런데 집주인은 문을 닫아건체 땔감이 없어 
방에 군불을 못 넣으니 재워줄 수 없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삿갓의 입에서 절로 나온 시 한 수가
邑名開城何閉城(읍명개성하폐성) 
山名松岳豈無薪(산명송악기무신) 
고을 이름은 개성인데 어찌 문을 닫아걸며
산 이름은 송악인데 어찌 땔감이 없다 하느냐

즉, 개성은 성문을 연다는 뜻인데 대문은 닫아 걸었냐는 말이며,
개성에 있는 송악산은 소나무가 울창하다는 말인데 
집안에 땔깜이 없어 군불을 못 땐다니 웬말이냐 는 말이다.
과연............. 입이 다물어 지지가 않는 군
집 주인의 게으름을 나무라는 말이기도 하지만
개성과 송악산을 운(韻)자로 한 그의 탁월한 시재(詩才)가 부럽다.
지옥가기 꼭 조~~~타

천하를 방랑하던 김삿갓이 금강산에 이르게 되었다. 
수풀사이로 난 작은 길을 걸어가다가 절을 발견한 김삿갓은 
아픈 발을 쉴 겸 법당으로 가는 층계를 올라갔다. 
법당 대청 안에는 스님 한 분과 유건을 쓰고 도포를 입은 
젊은 선비 한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에헴!" 
김삿갓은 사람이 왔음을 알리기 위해 일부러 큰기침을 했다. 
"누구요?" 
중이 먼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물었다. 
"절 구경을 좀 왔소이다." 
김삿갓은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며 다짜고짜 법당 안으로 척 올라섰다. 
"이 양반이 무례하게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올라오는 게요?" 
유건을 쓴 젊은 선비가 눈에 쌍심지를 돋우고 날카롭게 내뱉었다. 
"법당이지요, 자비로우신 부처님께서 어디 양반 쌍놈 가리신 답니까?" 
"아니 이 사람이?" 
선비는 어이가 없는 지 김삿갓의 행색을 살폈다. 
차림새는 비록 남루했지만 글줄이나 읽은 사람인 듯 해서 
함부로 얕잡아 볼 수 없는 상대인 것 같았다. 
젊은 선비는 이 무례한 방문객을 보기 좋게 물리칠 계책을 재빨리 궁리했다. 
"어디서 오셨소?" 
이번에는 중이 말문을 열었다. 
"예'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나그네올시다. 잠시 쉬어갈까하여 들렀습니다." 
김삿갓은 앉으라는 말도 없는데 그들 곁에 털썩 주저앉으며 넉살좋게 말했다. 
"여보, 우린 지금 긴요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자리를 비켜 주시오." 
선비가 눈살을 찌푸리며 노골적으로 그를 내쫓으려 했다. 
"허허, 보아하니 은밀한 말씀을 나누고 계신 모양인데, 참 딱도 하시오." 
김삿갓은 냉큼 일어날 기색은커녕 점점 그들의 말꼬리를 물고 늘어질 작정이었다. 
"아니 뭐가 딱하단 말이오?" 
중이 험악한 기세로 쏘아 부쳤다. 
"스님, 긴요한 이야기라면 뒷켠 승방에서 나눌 일이지 
어찌 부처님 앞에서 나눈단 말씀이오, 
앉아만 계셔도 구만리를 내다보시는 부처님은 두렵지 않고 
한낱 지나가는 이 과객은 두렵단 말이오." 
"뭣이?" 
선비와 중은 동시에 입을 떡 벌렸다. 말을 듣고 보니 이치에 맞는 말이었다. 
인간은 속일 수 있어도 부처님은 못 속이는 법, 
지금까지 부처님 앞에서 비밀 이야기를 하다가 
보잘 것 없는 과객하나를 쫓아내려던 자신들이 부끄러웠다. 
선비는 이 낯선 과객의 말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한 가지 꾀를 생각해 냈다.
글겨루기를 해서 내쫓을 심산이었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풍류과객을 자처하며 어설픈 글귀나 읊조리고 
밥술이나 얻어먹으려는 부류들을 많이 겪어보았지만 
그런 사람들 치고 제대로 시 한 수 읊는 것을 보지 못했다. 
선비는 김삿갓도 그런 사람중의 하나 라고 생각해서 
글짓기로 콧대를 꺾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우선 상대방의 실력을 알아야 하겠기에 먼저 딴청을 피웠다. 
"보아하니 풍월께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진정 풍류를 아는 선비라면 내 톡톡히 선비대접을 하겠지만 
글에 자신이 없다면 저쪽 주방으로 가서 찬밥이나 얻어먹고 가시구려." 
김삿갓은 이 말을 듣고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오냐, 네놈이 글줄이나 읽은 모양인데 어디 한 번 혼나봐라.` 
이렇게 선비를 비웃으면서도 겉으로는 정색을 하고 점잖게 말문을 열었다. 
"거 듣던 중 반가운 말씀이외다. 
제가 깊이 배운 바는 없으나 일찍이 부친 덕에 천자문을 읽어 
하늘 천 따 지는 머리 속에 집어넣고 있으며 
어미 덕으로 언문 줄이나 깨우쳤으니 하교해 주시면 가르침을 받겠소이다." 
김삿갓의 이 같은 말에 중이나 선비는 더욱더 눈살을 찌푸렸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이건 은근한 도전이다. 
"좋소, 그럼 내가 먼저 운을 부를 테니 즉시 답하시오." 
선비는 이왕 내친김에 이렇게 말하고는 잠시 생각한 끝에 입을 열었다. 
"타." 
그의 입에서 `타`란 말이 떨어졌다. 
"타라니, 이건 한문풍월이요, 아니면 언문 풍월이요?" 
김삿갓은 눈을 빛내며 선비에게 물었다. 
"그야 물론 언문 풍월이지." 
김삿갓을 완전히 무시하는 말투였다. 
"좋소이다. 내 답하리다. 
사면기둥 붉게 타!" 
"또 타!" 
"석양 행객 시장타!" 
"또 타!" 
"네 절 인심 고약타!" 
"........" 
`타`자가 떨어지기 바쁘게 김삿갓이 대답하니 선비는 어이없는 모양이었다. 
더구나 갈수록 듣기 거북한 말만 나오니 다시 더 부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무슨 창피를 당할지 모르는 일 이였다. 
김삿갓은 선비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다시 그가 `타!`하고 뱉으면 
`지옥가기 꼭 조~타!` 하고 내쏠 작정이었다. 

푸 하하하하............ 글 줄이나 읽은 선비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예나 지금이나 썪은 것들 하는 짓거리는 참으로 고약 타!

 
출처 : 블로그 > 양지바른 오두막집 | 글쓴이 : 술래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