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스크랩] 김삿갓 이야기-스님들...

사랑25시 2006. 1. 31. 18:00
      스님들...

    진묵대사의 게송(偈頌)
금강산 구경을 시작한 김삿갓은 인맥을 따라 백운암이라는 절에 공허스님을 찾아간다.
이 스님을 알려준 백씨가 기별을 하였는지 공허스님은 김삿갓 을 보자 대뜸 이렇게 묻는다.
"선생은 시를 잘 지으신다고 들었습니다. 나하고 시짓기 내기를 한번 해보실 까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분수가 있지 만나는 댓바람에 시짓기 내기를 하자는 것은 상식에 벗어나는 짓이다.
생각에 따라서는 사람을 깔보고 함부로 덤비는 수작이였으나 공허스님에게서는 이상하게도 그와 같은 불쾌감은 추호도 느껴지지 않았던 삿갓이였다. 이런 만남을 시작으로 하여 두 사람의 관계가 좋아지기 시작하고 어느날에는 함께
곡차를 마시며 시를 논하니 공허스님이 문득 시를 한 수 읊어 주는 것이었다.
"진묵대사 라는 분은 금강산에도 여러 차례 다녀가셨지만, 본시는 전주 봉서사에 계시던 큰스님이셨지요.
그분은 수많은 게송(偈頌)을 지으셨는데,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송이 있으니 한번 들어보시지요."

      하늘은 이불 땅은 깔개 산은 베개요
      달은 촛불 구름은 병풍 바다는 술통이라
      크게 취해 거연히 일어나 춤을 추니
      긴소매에 곤륜산이 걸릴까 걱정이네.

      天衾地席山爲枕 (천금지석산위침)
      月燭雪屛海作樽 (월촉설병해작준)
      大醉居然仍起舞 (대취거연잉기무)
      却염長袖掛崑崙 (각염장수괘곤륜)
김삿갓은 진묵 대사의 시를 들어보고, 그 웅장한 기상에 그게 탄복하였다.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라. 마치 이와 같으리라고 감히 생각해 보지만 김삿갓도 탄복하고 부족한 나도 탄복해 마지 않는 이 시는 읽는 것만으로도 삼라만상을 내 손 안에 쥐고 있는 것만 같다.





    공허스님과 시 문답
어느덧 공허스님과 정이 두터워진 김삿갓은 백운암에 거처하며 금강산을 맘대로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 아침에는 공허스님과 함께 입석봉(立石峰) 구경을 가게 되었는데, 공허스님은 입석봉 꼭대기에 올라서자 김삿갓에게 이런 제안을 해 오는 것이 아닌가.
"삿갓 선생! 우리가 오늘은 여기서 시짓기 내기를 한번 해볼까요?"
"하하하, 공허스님은 시를 짓는 것이 그렇게도 즐거우시옵니까?"
"사람은 시 짓는 훈련을 쌓을 수록 머리가 맑아지는 법이랍니다. 시는 그래서 귀하다는 게 아니겠어요. 그러나 시를 아무리 짓고
싶어도 상대할 시인이 있어야 말이죠. 오늘은 천만 다행하게도 백아가 종자기를 만난 셈이니, 우리 피차간에 거문고를 마음껏 타 보자는 말씀입니다."
"좋습니다. 스님께서 먼저 읊으십시오. 그러면 제가 화답을 하겠습니다."
"내가 한 줄씩 읊을 테니 선생도 나의 시와 대조가 되는 시를 한 줄씩만 읊어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공허스님은 산 밑에 떠돌아 가는 구름을 그윽히 굽어 보다가,

    아침에 입석봉에 올라오니 구름이 발 밑에서 생겨나네.
    朝登立石雲生足 (조등입석운생족)

참으로 실감나는 즉흥시였다. 김삿갓은 산 밑에 황천담(黃泉潭)이 있었던 것이 머리에 떠올라,

    저녁에 황천담의 물을 마시니 달이 입술에 걸린다.
    暮飮黃泉月掛唇 (모음황천월괘진)
공허 스님은 그 화답을 듣고,
"참으로 기가 막히는 대구올시다" 그리고 시야를 둘러보고는 다시 다음과 같이 읊는다.

    소나무가 남으로 누웠으니 북풍임을 알 수 있도다.
    澗松南臥知北風 (간송남와지북풍)

김삿갓이 다시 화답한다.

    대 그림자가 동쪽으로 기울었으니 석양임을 알 수 있소.
    軒竹東傾覺日西 헌죽동경각일서)

공허 스님이 또 가로되,

    깍아지른 절벽에도 꽃은 피어 웃고 있네.
    絶壁雖危花笑立 (절벽수위화소립)

김삿갓이 화답하기를,

    봄은 더없이 좋아도 새는 울며 돌아가오.
    陽春最好鳥啼歸 (양춘최호조제귀)

공허 스님이 가로되

    하늘 위의 흰구름은 내일엔 비가 될 것이오.
    天上白雲明日雨 (천상백운명일우)

김삿갓이 또 화답한다.

    바위 사이의 낙엽은 작년 가울 것이로다.
    岩間落葉去年秋 (암간낙엽거년추)

이 얼마나 멋드러진 조화인가! 공허스님의 얼굴에 환희의 빛이 넘쳐 오르며 다시 한 수를 읊는다.

    그림자가 푸른 물에 잠겼건만 옷은 젖지 않소.
    影浸綠水衣無濕 (영침록수의무습)

공허스님의 시에는 선미(禪味)가 넘쳐 흐른다. 그림자가 물에 잠겨도 옷은 젖지 않는다니. 얼마나 기발한 시상인가. 그러나 김삿갓의 화답도 그의 못지 않으니,

    꿈에 청산을 답사했건만 다리는 고달프지 않네.
    夢踏靑山脚不苦 (몽답청산각불고)

이에 화답하기를

    청산을 사고 보니 구름은 절로 얻어지오.
    靑山買得雲空得 (청산매득운공득)

김삿갓이 절로 화답하기를

    맑은 물가에 오니 물고기가 절로 따라오오.
    白水臨來魚自來 (백수임래어자래)

공허 스님이 돌 한 덩어리를 굴려 내리며 다시 욾는다.

    산에서 돌을 굴리니 천 년 만에야 땅에 닿소.
    石轉千年方到地 (석전천년방도지)

김삿갓이 즉석에서 대꾸한다.

    산이 한 자만 더 높으면 하늘에 닿았겠소.
    峰高一尺敢摩天 (봉고일척감마천)
공허스님은 거기까지 어울리다가, 감흥을 억제할 길이 없는지 감삿갓의 손을 덥석 움켜 잡는다.
"삿갓 선생! 우리가 오늘에야 만난 것이 너무도 늦은 감이 없지 않구료."하며 솔직한 심정을 털어 놓는다.

 
출처 : 블로그 > 양지바른 오두막집 | 글쓴이 : 술래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