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스크랩] 김삿갓 이야기-삶의 모습
사랑25시
2006. 1. 31. 17:59
장기판 구경
방안에서 한바탕 싸움판이 벌어지네 포가 훨훨 날아 넘어 위세가 웅장하나 상이 떡 버티고 있어 그 진세도 만만찮다. 酒老詩豪意氣同 (주노시호의기동) 戰場方設一堂中 (전장방설일당중) 飛包越處軍威壯 (비포월처군위장) 猛象前陣勢雄 (맹상전진세웅) 차가 바로 달려 졸을 먼저 잡아먹고 모로 가는 날랜 말이 궁을 항상 엿본다 이 말 저 말 잡아먹고 연달아 장 부르니 기사 둘 만으로는 당해 내기 어렵도다. 直走輕車先犯卒 (직주경거선범졸) 橫行駿馬每窺宮 (횡행준마매규궁) 殘兵散盡連呼將 (잔병산진연호장) 二士難存一局室 (이사난존일국실)
잡아먹고 버리기로 승부가 결정난다. 그 옛날 사호들은 바둑으로 세상 잊고 신선놀음 하다 보니 도끼 자루 썩었다네. 縱橫黑白陣如圍 (종횡흑백진여위) 勝敗專由取捨機 (승패전유취사기) 四皓閑枰忘世坐 (사호한평망세좌) 三淸仙局爛柯歸 (삼청선국란가귀) 꾀를 써서 요석 잡아 유리하게 돌아가니 잘못 썼다 물러 달라 손을 휘휘 내젓는다 한나절에 승부 나고 다시 한판 시작하니 돌소리는 쩡쩡하나 석양이 저물었네. 詭謀偶獲擡頭點 (궤모우획대두점) 誤着還收擧手揮 (호착환수거수휘) 半日輸영更挑戰 (반일수영갱도전) 丁丁然響到斜輝 (정정연향도사휘) 생각도 못했다. 나는 바둑에 대해 잘 모르지만, 옛날에 비해 요즘 내가 아는 사람들은 바둑이며 장기를 잘 안하는 것 같다. 살아가는 것 만 해도 머리가 아파서 그런걸까?
구름은 있어도 서로 뒤지려 한다. 水流心不競 (수유심불경) 雲在意俱遲 (운재의구지) 이일을 그냥 넘길 수 없었던 삿갓은 도와 주기로 결심하고 그 마을 사또에게 가서 암행어사인 척 하며 그 친구인 장형준이란 사람을 잡아들인다. 그리고 그 집에서 나온 금이랑 돈들을 앞에 놓고 "네놈은 산적이 틀림없구나. 이 돈과 패물은 양민들 한테서 강탈해 온 장물임이 틀림 없으렸다?" "소인더러 산적이라니, 그 무슨 날벼락 같은 말씀을 하시 옵니까?" "이놈아! 능청은 그만 떨고, 사실대로 고백하거라. 너희 집에 현금 천 냥이란 대금이 어디서 생겨난 돈이냐 말이다. 지금 우리는 산적의 두목을 체포해 왔는데, 그놈의 자백에 의하면, 네 놈은 산적의 부하라는 것이다. 두목이 분명히 그렇게 말했는데, 너는 그래도 아니라고 우기겠느냐?" 이런식으로 계속 닥달을 하니 산적으로 몰려 목숨을 잃게 될 판인 장형준이 사실대로 이실직고 하게 되니... "그 돈은 .... 친구에게 빚을 주었다가 돌려 받은 돈이옵니다." "친구에게 빚을 주었다가 돌려 받은 돈이라면, 그 친구의 이름은 뭐라고 하느냐?" 장형준은 양심에 가책을 느꼈는지, "빚을 얻어 갔던 친구는 현태덕이라고 하옵니다." 하고 조그맣게 대답한다. 김삿갓은 범죄 사실을 밝혀 놓고 나니, 무척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친구에게 받은 천냥 돈임을 실토하게 되니 이로서 사건이 마무리지게 된 것이다. 사건이 잘 해결되어 기쁜 마음으로 다시 방랑길에 오른 김삿갓이 한참 산길을 걷고 있는데 뒤에서 현태덕이란 사람이 숨가쁘게 쫓아온다. 은혜에 대한 보답을 하러 온 것이리라. 하지만 삿갓이 극구 거부를 하니 현태덕이란 사람이 오히려 민망해 하기에 옆전 한 잎만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길을 떠나려 하니 이미 날이 저물어 오고 산은 깊기에 잘 곳이 마땅치 않았다. 이에 현태덕이란 사람이 자기 친구가 근처에 산다 하여 그 집으로 김삿갓을 데리고 갔다. 그곳은 한없이 초라한 움막이였으나 숯을 구어 살아가는 그 친구의 마음은 신선이 따로 없었다. 저녁의 쌀이 없어 감자로 끼니를 때우고 밤에 세 명이 잠을 자려 하니 도대체 방이 좁아 도저히 다리를 펼 수 없고 몸을 되돌리지도 못하겠는게 아닌가. 도무지 삿갓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불편해하나 두 사람은 눕자마자 코를 골며 잠이 들어 버렸다. 삿갓은 아예 잠자기를 포기하고 뒷산에 올라 달구경을 하고 있는데 새벽이 가까워 오자 문득 배가 고파왔다. 그리하여 달을 올려다 보며 다음과 같은 지를 지었다.
땅은 천 리로 넓건만 다리를 펼 수 없네 오밤중에 다락에 오름은 달구경 아니오 사흘을 굶은 것은 신선이 되려 함이 아니로다. 天高萬里不擧頭 (천고만리불거두) 地활千里不宣足 (지활천리불선족) 五更登樓非翫月 (오갱등누비완월) 三朝 穀不求仙 (삼조벽곡불구선)
"나는 길 가던 나그네요 하룻밤 신세를 지고 싶으니, 주인어른 한테 나의 뜻을 좀 전해주오." 그랬더니 머슴은 대뜸 머리를 가로젓는다. "저희 집 초시어른께서는 성미가 워낙 괴팍하셔서 그런 일이라면 저는 말씀드릴 수가 없사옵니다. 손님께서 주인어른 한테 직접 말씀해 보십시오." 그러면서 이런 말까지 귀띔해 주는 것이었다. "저희 집 영감마님께서는 손님에 따라 대접하는 격차가 매우 심하시옵니다. 손님을 상객으로 대접하고 싶을 때에는, 저에게 저녁상을 내오라고 명령하실 때, 손으로 이마를 쓸어 보이시고, 중객으로 대접하고 싶을 때에는 손으로 콧등을 어루만져 보이시고, 하객으로 취급하고 싶을 때에는 손으로 수염을 쓸어 내리도록 되어 있답니다." 이 말을 듣고 초시영감에게로 가니 숫제 귀먹거리 흉내를 내며 김삿갓을 내쫓려는 것이였다. 다행히 마음 착한 친구와 같이 있어서 그 친구 덕분에 김삿갓은 겨우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이 때 머슴이 와서 밥상 올릴 것을 물어보는데, 김삿갓은 초시영감이 친구한테 어떤 대접을 할까 궁금해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초시영감의 친구가 저녁을 김삿갓과 같이 먹겠다고 하자 초시영감은 잠시 머뭇거리다 머슴에게 은근 슬쩍 콧등을 어루만지는 것이 아닌가. 저녁상을 중객용으로 차려 내오라는 암시였다. 그 꼴을 보는 순간 불쑥 반발심이 오른 삿갓이 "초시 어른 이마에 벌레가 기어가고 있사옵니다."하니 "엣? 이마에 벌레가?" 하며 이마를 만지자 머슴이 웃으면서 사라지고 저녁상으로 온갖 산해진미로 거나하게 차려져 나왔다. 삿갓에게 속은걸 눈치챈 주인영감은 오만상을 찌푸린다. 그러나 저녁밥은 푸짐하게 먹었지만 내일 아침 조반상이 과연 어떻게 나올지 자못 궁금하였다. 다음날 아침 주인과 김삿갓은 조반을 각 상으로 먹게 되었다. 그런데 주인영감 밥상에는 어란자반에 닭고기 무침까지 올라 있건만, 정작 김삿갓의 밥상에는 김치 깍두기에 가지나물 한 접시만이 덜렁 놓여 있을 뿐이 아닌가. (저 놈의 늙은이가 어제저녁 나에게 속은 것이 분해, 오늘 아침에는 나를 계획적으로 골리고 있구나. 아무리 그렇기로 손님에 대한 차별 대우가 이렇게 심할 수가 있을까.) 김삿갓은 속으로는 어지간히 약이 올랐지만 아무 말도 안하고 조반을 깨끗이 먹어 치웠다. 그리고 나서 주인 영감과 작별을 나누고 떠나는 길에 그 집 대문에 다음과 같은 시를 한 수 써 갈겨 놓았다.
내 자가 지팡이를 잃고 허리에 띠를 둘렀네. 天脫冠而得一點 (천탈관이득일점) 乃失杖而橫一帶 (내실장이횡일대) 천(天)자가 모자를 벗고 점 하나를 얻었다 함은 개 견(犬)자를 말함이요, 내(乃)자가 지팡이를 잃고 허리에 띠를 둘렀다 함은 아들 자(子)자가 분명하니 김삿갓은 주인 영감을 개자식이라고 써놓은 것이다. 점잖은 체면에 차마 개자식이라고 입으로 대 놓고 말할 수가 없어, 시를 이용해 간접적으로 표현해 놓았던 것이다.
"잘 짓지는 못해도 그냥 저냥 운은 맞추지요." 하고 대꾸 했다. 그랬더니 운(韻)자로 '찾을 멱(覓)'자를 내 놓으면서 시를 지어 보란다. "허허 참 빌어 먹고 다니다보니 별 놈을 다 보는 군." 생각 하면서 "이눔의 시골 촌 훈장을 좀 놀려 먹자" 싶어 이렇게 지어 읊었다.
첫 멱자도 어려운데 또 다시 "멱"자인가 하룻밤 쉬어 감이 "멱"자 운에 달렸으니 시골 훈장 아는 자는 "멱"자 뿐인가 하노라 許多韻字何呼覓 (허다운자하호멱) 彼覓有難況此覓 (피멱유난황차멱) 一夜肅寢懸於覓 (일야숙침현어멱) 山村訓長但知覓 (산촌훈당단지멱) 훈장도 이 뜻을 새겨보니 객이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알았든지 저녁도 성찬으로 챙겨주며, 대접을 융숭하게 잘 해줬대나 어쨌다나. 경상도 사투리로 시껍묵고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든거 겠지. 비록 행색이 초라하다고 그 사람의 모든 것까지 하치보는 인간의 오만한 행태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나 보네. 그래서 사람을 평함에는 좀 시간을 두고 지켜봐라 하는 갑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