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스크랩] 김삿갓 이야기,- 흩어진 글들 모음1

사랑25시 2006. 1. 31. 17:58
      흩어진 글들 모아서

    구상유취(口尙乳臭)

어느 더운 여름날 김삿갓이 마을 앞 개울을 지나게 되었는데 제법 나이들어 뵈는 선비들이 둘러 앉아서 개를 잡아 놓고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시를 짓는다고 마구 떠들어 대고 있었다.
술을 좋아하는 김삿갓이 회가 동하여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말석 한 자리를 잡고 앉아 술잔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김삿갓의 행색이 초라해서 인지 본 체도 않고 있었다.

김삿갓은 심기도 불편하고 아니꼬운 생각이 들어
˝구상유취로군!˝ 하고는 일어서 나가 버렸다.
그랬더니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했지?˝
˝구상유취라고 하는 것 같더군.˝하며 저희끼리 주고 받더니
하인을 시켜 김삿갓 데려오라고 했던 모양인지 뒤쫒아 온 하인들에게 끌리다시피 하여 선비들 있는 곳으로 다시왔다.

그러고선 힘께나 쓰게 뵈는 자가 불쑥 앞으로 나서며, ˝방금 뭐라고 그랬지? 양반이 글을 읊고 있는데 구상유취 라니?˝
그러면서 하인을 시켜 매를 칠 기세를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김삿갓은 태연하게 ˝내가 뭐 잘못 말했습니까?˝하고 반문했다.
˝뭐라고?  무얼 잘못 말했느냐고? 어른들을 보고 입에서 젖내가 나다니 그런 불경한 말이 어디 또 있단 말이냐?˝
이에 김삿갓은 한 바탕 크게 웃으며,
˝그거 참 큰 오해를 하셨군요. 내가 말한 구상유취는 입에 젖내가 난다는 구상유취(口尙乳臭)가 아니라, 개 초상에 선비가 모였다는 구상유취(拘喪儒聚)였습니다.˝

김삿갓의 대답을 들은 일행이 머슥해져 할 말을 잊고 있는데 한 선비가 무릎을 치고 크게 웃으면서, ˝허허, 우리가 선비를 몰라 보았소. 자아 이리로 와서 같이 술이나 들며 시라도 한 수 나눕시다.˝
하고 오히려 사과를 하며 술 한 잔을 주더라는 이야기이다.

허~ 참. 그 어줍잖은 실력으로 사람차별 하더니 놀리는 줄 뻔히 알면서도 당해야하는 어중간한 실력이 불쌍하구나.
요즘에 이렇게 했다면 아마도 살인이 나지 않았을까, 그래도 당시는 아직 순수 인간성이 남아 있었기에 부끄러워 할 줄도 알았던 것이겠지.

에고, 제가 알면, 그래서 똑똑하면 얼마나 많이 알고, 얼마나 똑똑하다고.... 쯧쯧...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말이 그때는 없었던가?
하기사 아직도 이 속담을 모르는 위인이 많은 것 같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릇일세.




    금강산

김삿갓이 주유천하를 시작하여 금강산엘 들어갔다. 금강산 기슭에 이르니 벌써 눈 앞에 펼쳐지는 풍광이 정녕 신선이 거할만 하다고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산 속으로 들어 갈 수록 기기묘묘한 산봉우리며 그 사이로 굽이쳐 흐르는 계곡이 그리는 경광(景光)에 절로 시 한 수가 줄줄 흘러 나오기 시작한다.

      一峰二峰三四峰(일봉이봉삼사봉)
      五峰六峰七八峰(오보육봉칠팔봉)
      須臾更作千萬峰(수유갱작천만봉)
      九萬長天都是峰(구만장천도시봉)

      한 봉우리 두 봉우리 서너봉우리
      다섯 봉우리 여섯 봉우리 일여덟봉우리
      어느새 천만개 봉우리가 새로 생겨나니
      구만리 장천이 모두 산봉우리 뿐이로구나.
김삿갓을 세칭 이백 두보에 뒤지지 않는 대 시인이라 부르는 것이 결코 허언(虛言)이 아님이 이런 시들로 증명되고 있다. 간단한 숫자의 나열로 이렇게 아름다운 글귀가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것...

 
출처 : 블로그 > 양지바른 오두막집 | 글쓴이 : 술래 [원문보기]